VANUATU/TRIP

바누아투 역사 속으로 3

Bluepango1 2007. 5. 7. 16:06

 

 

 

< 이 글은  바누아투에 미국 보건 전문 요원으로 자원 봉사를 나온 민정선씨가 쓴 글입니다.

원본은 http://www.bluepango.com 의 korean - Volunteer 메뉴로 들어 가시면 원문 및 기타 자원 봉사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올라 와 있습니다. >

 

 제가 보건 봉사자이기도 하지만 바누아투에서 일어난 일은 놀랍더군요.

 

전세계에서 격리되어 살아온 수천년을 살아온 바누아투인들은 독감, 홍역, 수두 외의 몇가지 (우리에겐 가벼운) 질병에 대항할 면역시스템이 전혀 없던 상태였습니다.  런던에서 콧물을 훌쩍거리게만 할 질병이 바누아투에선 사망요인이 되버린거져.  이전 글에서 언급된 불운의 Mr. Williams 1839 Erromango 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당시 4,500명정도의 인구가 Erromango 에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1930년엔 그 인구가 500으로 줄어있었습니다.  Aneityum (개인적으로 바누아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중의 하나로 손꼽는 ^^) 섬의 인구는 1850년 당시 3,500명으로 예상됬는데요 1905년에는 405명이었습니다. 

 

서양인들이 발을 디딘 모든 섬은 전염병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인구절감은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 였을듯 합니다.  1800 년에  바누아투의 전체인구는 백만명정도로 추정됩니다.  1935년에는 41,000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말레쿨라섬의 한 여인이 물었다고합니다.  "아이를 낳아야하는 이유가 뭡니까?  백인이 온후로 다 죽어버리는데요..." 

 

블랙매직이 성행하는 태평양 섬 문화를 바탕으로 대규모의 전염병들은 무당들의 행위로 이해되었습니다.  전도사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는 믿음은 아니었져.  그래도 끊임없이 전도사들의 발길은 계속됩니다.  John Williams 를 후원해 보냈던 London Missionary 는 계속해서 전도사들을 파견하는 대신 외모적으로 유사한 사모아인들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인을 보내는것보다는 안전한 선택이었겠져. 

 

원주민의 눈으로 보기에 자신의 부족민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홍역, 수두등에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반응을 보이는 전도사들이 너무나도 당연히 이 질병을 일부러 불러들인 무당들로 보여졌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에게 치유의 능력이 있겠다고 느껴진바 더더욱 전도사들은 식인문화의 산물이 됩니다.  1861 년 캐나다에서 파견된 George Gordon 이라는 전도사는 '우리의 신이 이 전염병을 몰거온거다' 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 분 생각에는 그럼으로써 좀 더 많은 원주민들이 하느님을 따를꺼라고 믿었나보져.  원주민들은 조금 의심의 여지가 있었지만 당사자가 인정하기도 했기에  Mr. Gordon 과 그의 가족들을 요리하는데 약간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는 후문입니다. 

 

19세기의 바누아투가 어땠을지를 예측해보는것도 재밌습니다.  Sandalwood 상인에서 야심찬 전도사들까지 다양한 이방인들이 인육에 대한 미각이 특히 발달한 원주민들이 사는 해변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니까요.  물론 모두 불청객들이었다는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물결이 뒤바뀌어 '이 사유지를 침범하는 개와 검둥이는 무단사살될 것이다'하는 사인들이 내걸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20세기로 넘어갈무렵 바누아투에는 55명의 영국인 정착민과 151명의 프랑스인 정착민들이 있었습니다.  서로 사이가 않좋았다는건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트랜드인듯 싶지만여...  섬의 어느정도의 안정을 주기위해 1906 년 공동통치 (The Condominium) 가 성립됩니다.  그 결과로 두 개의 정부, 두 개의 high commisions, 두 개의 공식국어, 두 가지의 화폐, 두 가지의 우표,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가지의 교육시스템이 탄생합니다.  꼭 아이들 장난같이 되버린거져.  Ni-Vanuatu 들은 그들의 거주지역에 따라 영국식 삶을 살건지 프랑스식 삶을 살건지 결정되어졌으며 서로 상대방을 불신하라는 믿음까지 심어졌습니다.  물론 바누아투의 독립에 수십년간의 이런 생활환경이 도움이 되었을리는 만무합니다. 

 

1980년을 맞이하여 바누아투는 기원하던 독립을 맞이합니다.  공동통치 시절의 뉴헤브리즈가 이리하여 바누아투로 바뀝니다.  "Vanua" 는 대부분의 남태평양 원주민언어로 '' 또는 '토지'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누아투의 새로운 장이 이들의 독립을 기점으로 열리게 됩니다.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세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