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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신마비장애로 하버드대졸업한 이일세씨, 그후 10년

Bluepango1 2007. 4. 26. 06:41

 

부제 : 차별없는 세상, 턱없는 세상을 만들다.

사고나기 3개월전의 이일세씨


가족사항
황해도 시골 출신으로 육군 중장으로 전역해 국회의원과 국회 사무총장까지 지내신 3대독자 내 아버지...
KBS 아나운서이시며, 현대문학 추천 시인이신 어머니...
그 사이에서 2남 2녀중 장남으로 서울 출생....

학창 시절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범생이였던 나....
늘 공부에만 전념했던 나는 막연하게 법관, 정치가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서는 너무나 자유분방한 생활 속에서....
술과 친구들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었던 나의 청년 시절들....


 

불의의 사고... 그날의 악몽...
대학 휴학후 군에 입대..... 제대.....

겨울이면 가장 즐겼던 스키를 타러 가족들과 함께 용평으로...
하지만...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어두운 운명의 그림자가 이미 나에게 드리워져 있었던 것을 미처 몰랐다....

그리고 그 날 나의 운명은 180도로 바뀌어 버렸다.

엠뷸런스에 실려 서울대학 병원 응급실에 도착...
의사의 말은 99퍼센트 가망이 없다...

사실상의 사형선고였던 것이다.

다른 병원으로 전전한 나는...
응급실에서 머리카락이 면도날에 의해 완전히 잘려나갔고, 스키복이 예리한 가위에 의해 잘려 나갔다...
머리에는 목뼈를 잡아당기기 위해 30파운드가 넘는 무거운 추가 달렸다.
경추 5,6번 골절이었다.

목뼈가 으스러져 뼛조각들을 제거하고 골반뼈를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만 3년 5개월의 병원생활....

친구들은 고시에 합격하고 의사가 되고 유학을 가며 미래를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으나... 나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병원에 누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사고나기 10분전 어머님과...

 미국 유학.
1992년 미국유학을 결심하였다.
내 몸 중에 온전한 곳은 머리밖에 없으니 마지막 기회는 오로지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렵고 힘든 유학 생활...
건강한 몸으로 해도 힘든 유학을 전신마비의 중증 장애인이 해내려니 정말 힘들었다.

다른 학생들은 10분이면 마칠 타이핑도 나는 1시간 이상이 걸렸고 욕창 걱정 때문에 밤새 휠체어 위에 앉아 있을 수만도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한 만큼 대가가 나왔고, 학부를 졸업할 때 4.0 만점에 3.8이 넘는 우수한 성적으로 매그나쿰라우디 Magna Cumlaudi(우등졸업) 상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다치지 않았다면 그저 꿈이나 꾸었을 하버드에도 입학하게 되었다.

한국을 떠날 때 친지들과 친구들은 "그 몸에 무슨 유학" 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내가 유학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들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비웃음이 보이는 듯하여 나로서는 더 이상 물러 설 수 없는 낭떠러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최후의 기회가 공부였던 것이다.

하버드대에서...

하버드의 생활
하버드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지만, 재미있고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
공부할 양은 산더미 같이 많아서 읽어야 할 책이 일주일에 서너 권, 써야 할 페이퍼가 과목당 20~30쪽에 달할 정도로 많았지만, 정신없이 읽고 쓰고 하다보면 그 많은 책들과 페이퍼들을 다 정리하고 한 학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떻게 그 공부를 다 해냈는지 참 나 자신이 신통하기도 하지만, 노력한 만큼 반드시 돌아온다는 진리를 깨닫게 만든 계기이기도 했다.

하버드에서 나의 학업을 담당하는 어드바이저(Alan Simpson 전 미 연방상원의원)의 말은 나의 삶의 큰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다.

"장애인이 장애인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너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자기의 일을 자기가 한다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고 의미도 축소될 수 있다. 네가 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에 장애인에 관련된 일을 하고자 하는 것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키워 왔던 꿈을 중증 장애인이 되어서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이 보다 의미 있고 장애인들에게 더 큰 용기와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해라"라는 말에 막연히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려고 했던 나에게 어렸을 때의 꿈인 정치와 법관의 길 중 하나의 길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우리나라의 의회 정치를 위해 내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본을 갖추어겠다는 꿈.
이상적인 의회 정치에 관련된 학문적 연구, 현실정치의 접근을 위한 선거 전략, 캠페인 등등 정치에 관련된 과목들을 집중적으로 수강하고 다양한 교내, 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내가 졸업한 하버드 캐네디스쿨은 하버드의 행정, 정책전문 대학원으로 사실상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를 양성하는 전문학교이다.

하버드를 다닐 때 학생과 교직원을 모두 합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나 하나 밖에 없었다.
학교의 중앙 대형 출입문을 드나드는데 내 힘으로는 도저히 열리지 않아 학교측에 자동문으로 바꿔줄 것을 요구하였고 그 요구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첫학기가 시작하자 마자 자동문으로 바뀌었다.
그 이외에도 장애인인 나를위해 많은 부분의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이 한국의 언론에 대서특필 되며, 나는 하루 아침에 '하버드의 정문을 고친사람'으로 유명해져 버렸다.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서둘러 귀국을 하였다.
나는 단 한번도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고 공부만 마치면 곧바로 귀국하여 내 나라에서 내가 해야 할 일,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는 것을 미리부터 확신하고 있었다.

 

하버드대 졸업사진


하버드대 단체 졸업사진

다시 한국으로 ...

대학강단, 민주당에서...
미국의 생활을 접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바쁜 생활들을 보내게 되었다.
라디오의 고정 칼럼도 맡았고 대학, 대학원에서 강의도 하며 보낸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

그 와중에 1999년에 민주당에서 창당멤버로의 영입 제의가 들어왔다. 나는 영입 제안을 받을 때 장애인 대표라기보다는 정책의 전문가로 새로운 정치를 해보자는 민주당의 이념과 취지에 동의하여 첫 정치의 발걸음을 민주당에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참 열심히 활동했었다.

'장애인이니까'하는 주위사람들의 시선이 싫어 전국 투어, 지역 직능별 간담회에도 다른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쫓아다녔고, 정당의 기초가 되는 정강 기초위원회에 소속되어 정강과 강령을 만들고 정책을 만드는 데에도 열심히 참여하였다.
결국 비례대표 후보로 16대 총선에 출마하게 되었다.
민주당에서 비례대표 후보순위를 발표하는 당일 아침 신문에도 "이일세 당선 안정권 확정적"이라는 기사가 실렸으나 마지막 단계인 청와대 결재에서 무슨 이유인지 번호가 36번으로 밀려 버렸다.
허탈함과 아쉬움이 있었으나 젊은 나이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무위원과 장애인 특위 위원장으로 활동을 하였다.

사단법인 열린세상 창단

2003년 주위의 많은 분들과 함께 '열린세상 국민문화 운동본부'를 설립하였다.
주위의 많은 분들과 함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회저변에 만연되어 있는 소외계층의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개선하고자 뜻을 함께 모아 단체를 구성하게 되었다. 많은 부분 부족한 점, 미흡한 점도 많았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가슴에는 아직도 뜨거운 사랑이 넘쳐나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턱없는 세상...
차별없는 세상...
아픔없는 세상...
열린세상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열린세상 부산지부 행사에서...

 

열린세상총회후 단체사진

 

열린세상 부산지부 임원진

 

열린세상 송년회

 

슈퍼맨 닥터리 이승복과 아산 병원 재활의학과 의사 유종윤과 함께
 

이일세씨의 캐릭터

 

열린세상운동본부 - http://www.openworld.or.kr

 

 

 

<약도> 문의 tel-02-442-7265 (사)열린세상국민운동본부

 

 

 

출처 : 세상속으로...
글쓴이 : 코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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