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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PD수첩 '영재교육' 방영..과학고=슈퍼입시학원이기 때문

Bluepango1 2007. 1. 10. 14:43

어제(2007.1.9) MBC PD수첩에서 대한민국 영재교육의 실상에 대해서 보도했습니다.

 

방송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영재 중의 영재만 입학하는 서울교대 영재교육원 입학생의 상당수가 서울 강남 출신이다.

2. 강남에는 영재학교 진학용 학원들(=사교육)이 즐비하다.

3. 이렇게 사교육을 거쳐야 과학고,과학영재고교에 진학하기가 수월하고 명문대까지 꿈꾸게 된다.

 

이게 과연 제대로 된 영재교육일까요? 아니라는 것은 관계자인 교육부, 학원, 학부모, 학생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러한 우리나라 영재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과학고가 '슈퍼 입시학원'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제대로 된 영재교육 시스템'이라면 다음 단계로 이뤄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 전 국민에게 영재로 선발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부여한다.
2. 영재교육의 목표에 부합한 공정한 방식으로 영재를 선발한다.
3. 차별화된 영재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4. 영재들은 자신들이 받은 교육을 바탕으로 국가에 이바지한다.

 

이렇게 네가지 과정 중에 과연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나마 1번은, 전국에 과학고가 있으니 괜찮은 듯 보입니다만 나머지 문제들은 1983년 경기과학고가 최초로 설립되어 학생들을 받기 시작한 이래 아래로 구르는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나고 있습니다.

2~3번 과정은 제가 과학고를 다녔던 1990년대 초반에도 심각한 문제였고, PD수첩을 보니 이제는 그 문제점들이 너무나 커지고 견고해져서 이제는 어디서부터 이 눈덩이를 해집고 깨야할지 모르겠네요.

 

1990년대 초반 제가 체감했던 과학고 선발 과정과 교육 시스템,

그리고 그 이후 이야기를 위 시스템의 1~4번째 과정에 맞춰 말씀드리겠습니다.

  

1. 전 국민에게 영재로 선발될 수 있는 동등한 기회 부여?

 

전국의 큰 도시와 도 단위 별로 과학고가 1~2개씩 설립되어 있기에, 일단 '영재 고등교육'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지고 있다고 보고 넘어가겠습니다.

 

2. 영재교육의 목표에 부합한 공정한 방식으로 영재 선발?

 

1991년 중2시절, 수강료가 비쌌던 과학고 대비 보습학원을 다니는 친구가 "한번 와서 네 실력 테스트나 해봐라" 던졌던 말이 제 인생을 바꿨는데요,

집이 넉넉치 못한 형편이었음에도 친구 말에 갈등하다가 결국 그 학원에 가서 테스트를 해보게 됐고, 그 결과에 충격받고 부모님께 부탁해서 1년간 '과학고 대비 학원'을 다니기로 하고 고3보다 힘들었던 중3을 보내게 됐습니다.

 

물론 제 실력에 충격받아서 다녔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과학고를 둘러싸고 돌았던 이야기가,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면, 이거 떨어져도 고교 학업과 대학 입시에도 큰 도움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과학고 준비 = 대입 준비라는 소리죠. 선발 방식부터 영재를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입시도 쉽게 패스할 수 있는 '공부 잘하는 애들'을 뽑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요새는 특별 전형 등 다양한 선발 방식을 도입했던데 일반 전형에서는 큰 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초등,중등 교육은 이미 하향 평준화된지 오래고, 이 교육만으로는 영재 고등교육 기관(외고,과학고,영재고 모두 포함)에 들어가기가 정말 힘듭니다. 일반적인 선발 방식의 과학고 입시는 '학원 다니며 정석과 성문 기본까지는 봐줘야 풀 수 있는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과학고 대비 학원은 일반 다른 학원과 달리 '중학생이 알아들을 수 있게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쳐야 하는' 특수성 때문에 학원비도 비쌉니다. 1991년 그 시절에도 학원비가 월 25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07년 대한민국 서울 강남의 학원비는 훨씬 더 비쌀테고, 여기를 이수한 학생들은 영재 고등교육 선발 과정을 쉽게 패스할 수 있겠죠.

 

요컨대 영재교육 목표와 괴리된 선발 방식과 준비절차, 우리나라 공교육의 폐해가 똘똘 뭉쳐서 영재교육기관 마저도 사교육을 받고 들어가야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3. 차별화된 영재교육 서비스를 제공?

 

차별화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맞습니다. 과학,수학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두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물리,화학,생물,지학 실험 및 컴퓨터 실습 시간이 일주일에 총 6~8시간이 됐기에 이건 저도 만족했었습니다.

 

다만, 이 시스템의 치명적인 맹점이 있습니다. 수학과 과학교육에 전념한다, 이 구조는 100% 입시용 체제로 탈바꿈하기에도 쉬운 구조라는 겁니다.

 

과학고도 은연중 서로 경쟁하고 있기에 명문대 진학율이 중요하고 학부모도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하기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과학고 시스템이 사실 놓고 보면 이러한 요구를 100% 만족시킬 수 있는, 입시에 최적화된 구조입니다. 고2 하반기부터는 입시에서 중요하지 않은 학문들(한문,미술,음악 등)은 다 떼고 100% 입시용 과목으로 편성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국영수+사회,과학(그당시 수능과 본고사의 99%를 차지한 과목인데 요새도 큰 차이 없을 듯 합니다)으로만 편성해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 모아놓고 막강한 교사 진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구조이기에, 진짜 대한민국 최고의 슈퍼 입시학원이 되는 셈입니다.

 

분명 일반 학교와 차별화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맞습니다만 입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절반은 과학고 다운 교육을 받더라도 나머지 절반은 슈퍼 입시학원을 다니는.. 그런 현실인거죠.

 

4. 영재들은 자신들이 받은 교육을 바탕으로 국가에 이바지?

 

1996년 2월 과학고를 졸업할때, 당시에 이미 공부 잘하는 친구들 중 소수는 이미 의대를 지원해서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과학고생이 의대를 지원하면 비교내신제 혜택을 못받았기에 내신이 좋은 친구들만 의대 지원이 가능했었습니다)

 "과학고생이 왜 의대를 가느냐".. 해묵은 논쟁이긴 한데, 의학도 인체와 생명을 탐구하는 과학이고 의사가 아닌 '의학 박사'가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 나쁜 것만은 절대 아닙니다만..

 

진짜 문제는, 당초 의지를 가지고 자연과학과 공대 계열을 진학했던 과학고생들이 중도에 자퇴하거나 졸업하고 다시 의대를 진학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소신을 가지고 자연과학 계열과 공대를 진학한 과학고생들이 세 가지 엄청난 스트레스 - 주변 어른들의 압력, 의대 간 친구들 소식, 대한민국 자연과학,공대의 암울한 미래 - 에 시달리는 것이 사실이죠.

 

그러니 '진짜 과학 영재들'이 일반 학생들에 비해 매우 힘든, 일부는 돈들여서 초등,중학교 과정과 사교육을 거치고, 수천만원짜리 기자재로 과학 실험을 해도 결과를 놓고 보면 전혀 의미가 없어지는 겁니다. 과학고는 이미 1990년대 부터 '슈퍼 입시학원'이었거든요. 그냥 여기 가면 입시용 좋은 교육 받고, 좋은 대학을 수월하게 갈 수 있다는.. 그게 우리나라 영재 교육의 99%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과학고는 슈퍼 입시학원입니다. 또한 이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바로 잡지 못하고 외고,과학고가 추가로 설립되고 있는 현실은, 정부가 '슈퍼 입시학원'만 더 양산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아울러 일반 교육의 질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고, 대학 입시 체제는 점점 더 꼬여만 가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위에서 언급한 총제적인 문제들은 정부,교육부의 똑똑한 행정가들이 시스템만 제대로 만들어놔도 상당 부분 해결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시스템을 악용하려는 사설학원과 학부모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들을 탓하기에 앞서 시스템 자체가 합리적으로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대체 언제쯤 우리나라 교육은 바로 설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 국민 만큼 교육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없다고들 하지만 교육계 실상을 들여다보면 부끄러워지는 현실. 교육열을 합리적으로,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고 국가의 밝은 미래를 열어줄 수 있는 영재들은 그들이 원하는 길을 걷도록 도와주는 교육 시스템을 기다려 봅니다.

출처 : 시사
글쓴이 : 프리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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