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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토로를 역사 테마 파크로 만들어요!

Bluepango1 2007. 8. 24. 15:48
우토로마을을살리자 상단 우측

우리나라에 한국전쟁과 일본 강점기의 슬픈 역사가 있다면

남아공에는 인종 차별의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남아공의 아픈 역사, 인종 차별 정책

 

피부 색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상점의 출입문도 달랐고, 화장실, 기차는 물론, 위급한 상황을 다루는 구급차도 서로 구분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흑인이 죽어간다고 해도 길 옆을 지나가던 백인 전용 구급차가 실어가는 법이 없었다고 해요.

 

같은 나라 안이지만, 흑인들이 여행을 하기 위해선 여행지역과 허용 시간이 명시된 허가서를 늘 가지고 있어야 했지요. 그 허가서를 까먹고 안 가지고 온 날엔 감옥에서 10년, 20년을 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사는 동네도 달랐지요. 케이프타운의 경우 시내 중심가나 경치가 아름다운 곳은 주로 백인 전용 지역이었고, 유색 인종은 변두리, 공업지대 근처, 흑인은 더 멀리 고속도로나 철길로 사방이 둘러 쌓이고, 출입구는 한정되어 함부로 마을을 벗어날 수 없는 모래 벌판에 살도록 되어 있었다고 해요.  

  

 

1968년 강제 철거 및 이주 시작

 

백인 인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토지가 더 필요하게 되자, 유색인종이 살던 인근 지역을 백인 지역으로 선포하고 일정 기간 안에 다 도시 외곽으로 이주할 것을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 한 곳이 바로 District 6, 우리말로는 제 6구역 정도 되겠네요.

 

1860년대부터 도시 빈민이 살기 시작했던 디스트릭스 6는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를 이어 가며  살던 이웃 집이 하나 하나 불도저에 의해 무너지는 꼴을 보며 1968년부터 한 집, 두 집 떠나야만 했다고 해요.

우리나라의 강제 철거처럼 철거 깡패가 동원되어서 주민이 죽거나 다치는 극단적인 이주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가슴 아픈 역사였습니다.

 

 

다르지 않은 우토로

 

자, 여기까지는 일본 교토 인근에 위치한 우토로 마을과 거의 비슷하게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우토로 마을도 2차대전때 일본에 공항을 짓기 위해 강제 노역으로 끌려온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사장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살던 마을이었죠. 워낙 아무도 기반 시설을 갖춰 주지 않아, 상하수도도 없이, 학교도 없이  그렇게 가난의 굴레 속에서 살았다고 해요.

 

그나마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 한 집, 두 집 떠나고, 이제는 정말 힘없는 노인분들이 대부분인 200여 후손들만 남아서 전쟁이 끝난지 60년이 다 되어 가도 아직 아물지 못한 흉터로 남은 채 대부분의 사람들 기억에서 조용히 지워져 가고 있던 마을이라고 하면 될까요?

 

한일 관계는 아직도 완전히 청산되지 못하고 해마다 8월 15일이면 한번씩 들썩들썩...하지만, 일주일도 안 지나서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그렇게 위안부 할머니들은 계속 시위를 하시고, 우토로 주민들은 계속 언제 철거당할지 모르는 집에서 불안하게 살고 계시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티비에라도 잠깐 나오면 눈물 짓다가, 또 채널만 돌아가면 살기에 바빠 도통 우토로 마을 이야기 같이 즐겁지 않은 일에 신경을 쓸 틈이 없습니다.

 

 

철거되었으나, 여론으로 견뎌낸 디스트릭스6 개발 계획

 

다시 남아공의 디스트릭스 6로 돌아 옵니다. 우토로 마을은 지금 철거를 하느냐 마느냐의 순간이지만, 디스트릭스 6는 철거가 되었습니다. 오래된 교회, 호텔 등 기념할만한 몇 채의 건물을 빼고는 대부분 철거가 되었지요.

뒤에는 테이블 마운틴, 앞에는 바다가 펼쳐지고, 시내 중심가 바로 옆이라 정말 금싸라기 땅이라 금방 개발이 될 줄 알았죠. 실제 테크니컨이라는 기술 전문 대학이 이전을 해서 들어오기도 했고, 한 구석엔 아주 작은 연립 주택단지가 건설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피부색이 다르다 하여 살던 곳에서 강제로 주민을 �아내는 것은 비인도적이라는 시민 여론과 국제 단체의 압력이 들끓었습니다. 그 결과 토지를 개발하려던 사업체들은 하나 둘 접고 떠납니다. 저주 아닌 저주를 받은 디스트릭스 6는 그리하여 잡초만 무성한 상태로 1990년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나오는 시간을 견뎠습니다. 

 

인종 분리 정책을 폈던 백인 정부와 흑인 정치 단체의 긴 협상을 거치고, 보복이 아닌 용서와 화합을 통해 미래로  나가기 위한 고통스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계속 풀밭으로 남아 있었지요.

 

 

디스트릭트6, 역사의 기념관으로 떠 오르다.

 

마침내 1989년 디스트릭스 6 재단이 만들어지고도 10년이 지난 1999년, 동네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교회 건물을 개조한 아담한 디스트릭스 6 박물관이 개관됩니다. 지금은 유럽의 왕실이나 각국 정치인, 혹은 유명 단체가 케이프타운을 찾으면 꼭 한번은 이 박물관에 들리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케이프타운 유명 관광지를 따라 운행하는 2층 버스도 이 박물관 앞에서 정차합니다. 케이프타운 인근에 사는 학생들은 한번쯤은 꼭 현장 학습을 하러 옵니다.

 

 저도 세 번 정도 갔는데....갈 때마다 인종차별 정책으로 인해, 당시 얼마나 많은 부모가, 아이들이, 이웃이 고통을 겪었는지....철거 당시 살던 주민들의 흑백 스넵 사진과 남겨진 그릇 조각같은 소박하고 일상적인 전시물을 통해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런 일은 다시 없도록 해야지.....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특히나 디스트릭스6 박물관의 가이드는 관광 가이드가 아니라, 과거 그 지역에서 살았던 주민이 직접 해 준답니다. 가이드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인종차별정책에 대해 책도 여러권 쓸 정도로  이해도 깊고, 또한 실제 본인이 겪었던 생생한 체험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설명이 더 실감이 납니다.

 

 

우토로를 기념관으로, 더 나아가서 체험 공간으로

 

자, 이제 우토로로 돌아갑시다.

이번에 우토로 마을 협상 시한이 8월 말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갑자기 디스트릭스 6가 생각이 나더군요. 우리도 우토로 마을을 디스트릭스 6처럼 운영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우토로 마을에서 남아있는 주민들이 거주하게 될 구역은 그다지 넓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빈 집 가운데 좀 큰 집을 있는 그대로 조금만 손질해서 징용가셨던 분들의 생활상을 담은 박물관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그 동안 많은 언론 기관에서도 다녀갔고, 다큐멘터리 작업도 진행중이니 자료는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과거 거기 사시던 분들이 스넵사진이나 증언을 기증해 주시면 더 좋겠지요. 남아 계신 할아버지나 할머니께서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일주일에 한번씩 당번을 정해 직접 방문객을 만나 앞에서 이야기를 해 주시면 더 좋겠고요.

현장 학습을 오거나 단체 관람객이 올 경우, 직접 글귀를 남기거나, 짧은 동영상을 남길 수 있게 해서 지속적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몇 집은 체험 공간으로 운영해서 당시를 체험하지 못해 본 요즘 사람들에게 상하수도도 없고, 학교도 없는 동네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게 어떤 것인지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거죠. 물론 숙박비도 받아야 합니다. 비행장 공사 노역이나 양철집을 수리하는 체험 노동 프로그램도 운영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마을 한 쪽엔 현재 건물을 활용해서 식당도 만들어야죠. 주먹밥같은 것도 팔고, 비빔밥같은 일품 한식도 팔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기념품과 관련 서적을 파는 작은 서점도 있어야겠구요. 우토로 관련 다큐멘터리나 방송 프로그램을 상영하는 아주 작은 극장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자꾸 자꾸 쓰다보니, 거대한 놀이 기구는 없어도 무슨 놀이동산같습니다.....^^

 

 

우토로, 고통이 아닌 치유와 이해의 공간이기를...

 

이 모든 것을 한국 사람이니, 일본 사람이니 따지지 말고, 가해자니 피해자니 서로 맞서지 말고, 같이 매듭을 풀어간다는 생각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공간이 자리를 잡으면, 일본에서도 더 많은 젊은 세대가 양국의 과거사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고, 물론 우리도 얼마간 치유의 효과를 볼 것입니다.

 

또 거기다가 일본을 방문하는 전세계 수 많은 관광객들은 어떻습니까? 사실 우리나라 방문객의 수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요? 유럽이나 북미의 젊은 배낭 여행객들은 사서 고생하는 여행도 참 좋아해요~ 우토로 체험 관광 코스는 분명 그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줄 것입니다.

 

잘 운영하면 평화애호인으로 보이고 싶은 전세계 정치인, 최고 경영자, 단체장 들이 우토로 마을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싶어서 줄을 설지도 몰라요~

 

 

꿈★은 이루어진다....이번에도!

 

꿈이라고요?  현재 남아공 케이프타운 디스트릭스6 박물관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우토로 마을 이야기가 더 극적이라면 더 극적입니다. 안 될 것 없습니다. 땅만 사면 됩니다...!!!! ^^;

안된다고요? 저는 심형래 감독과 종씨라서 안된다는 말 들으면 더 하고 싶어집니다. ^^;;; 낮에 관광 가이드를 해서 푼돈을 모아다가 돈 생길 때마다 조금씩  그렇게라도 하고 싶어집니다.  극장에서 디 워 보고 짠~하셨죠? 일본에다 우토로 체험 마을 만든 거 보시면 눈물 펑펑 흘리실 거예요.

 

이렇게 말해서 안 통한다면......이렇게도 말해봅니다. 대기업이나, 정부에서 돈을 대도 좋습니다. 사채업자님들 돈 많이 버셨죠? 몇 억 안됩니다. 이거 하시고, 티비 광고로 팡팡 쓰세요. 제2모모월드가 안되서 속상해하시는 모 회장님 일본에 우토로월드를 해 보시면 어떨까요? 멋모르고 토토로랜드인줄 알고 고양이 버스타러 오는 사람도 제법 될 겁니다.

 

것도 아니면.......주인이 밝혀지지 않는 서울 모처 땅이 있다던데, 우토로 땅이랑 슬쩍 바꿔 먹으면 안 될까요? 말도 안되는 소리는 하지도 몰라구요? 네....그렇다면....방법은 딱 하나....남았네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마지막 희망입니다. 같이 합시다.

우토로 마을 살리기 참여 방법
아고라 청원 바로가기 (서명이라도 합시다....마우스만 까딱거리면 됩니다.)
아름다운 재단 홈페이지에서 신용카드 휴대폰 송금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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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아름다운재단)

 

우토로마을을살리자 검은색 배너

http://www.utor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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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현재, 디스트릭스 6에는 과거 강제 이주를 당했던 주민들이 하나 둘 토지 소유권을 회복하고 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 오고 있습니다....아주 천천히 한 가정, 한 가정 돌아오느라 대부분의 땅은 아직 풀만 가득하지만, 언젠가 디스트릭스6는 다시 옛 모습을 찾을 것입니다.....그때가 되면 골목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옷을 차려 입은 청년들, 저녁 장을 보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모습이 골목 골목을 시끌시끌하게 만들어 주겠지요? 

 

우리가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우토로에도 언젠가 다시 사람 사는 소리가 가득할 것입니다.

 

출처 : sepial.net
글쓴이 : 심샛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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